이난숙 ㈜한양티이씨 부사장은 전기설계를 넘어 건설분야 여성 설계엔지니어 1세대로 손꼽힌다. 그는 1982년 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전기설계 분야에 입문해 국가 및 민간 주요시설의 전기ㆍ정보통신분야 설계를 전담해온 설계엔지니어로,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여성부문 최초로 ‘이달의 엔지니어상’을 수상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편견과 경력 단절, 육아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금녀의 벽을 깬 그를 만나보자. △전기공학과를 어떻게 전공하게 됐나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비고사를 못 봐 낙담하던 중 한국전력공사에 다니는 지인께서 “앞으로 엔지니어는 배고프고 가난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또 남자의 영역이라지만 여성의 직업으로 괜찮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나 또한 외우는 과목보다는 수학이나 물리와 같은 과목에 관심이 있어 전기공학을 택했다. 또 공부하면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끝까지 살 수 있는 길은 독자적인 기술영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입학 당시 정원 80명 중 2명이 여학생이었는데 중간에 1명이 전과해 홀로 남았다. 당시 교수님께서는 행여 적응 못 하고 휴학이나 전과할까 노심초사했다는 말을 졸업할 때 들었다.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서 시작했으나, 공부하고 이 분야에서 3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전기엔지니어로 살아갈 수 있음을 행복하게 느낀다. △전기설계 입문 배경과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1980년대 초 공대 여학생들이 졸업 후 전공을 찾아가지 못하고 도태되고 있다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이에 정부는 대형 건설사에 여성 인력을 채용하도록 장려했고, 1982년 현대건설이 여성엔지니어를 공개 모집해 운대가 맞아 국내전력사업본부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에는 기술직 여직원이 거의 없어 부서의 남자 직원들이 기술직 여직원과 함께 일하는 방법에 서툴러 돌아보면 재밌기도 하지만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았다. 입사 초기 현장실무를 습득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치마는 절대 입지 마라’,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여자가 재수 없다 등) 이상한 욕을 하면 절대 응대하지 말고 차분히 지나가라’는 주의사항을 받을 정도였다. 또 당시에는 결혼하면 퇴직하는게 불문율로 불평등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과 함께 1987년 퇴사했다. 다행히 퇴사하고 몇년 뒤 노조가 생기면서 결혼한 여직원들도 계속 근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재취업 계기와 어려웠던 점은 과거 몸담았던 현대건설에서 잘해서인 지는 아직도 알 수 없으나 현대건설에서 주선해 1991년 ㈜한양티이씨와 프로젝트별로 조인해 재택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한양티이씨는 현대와 일을 많이 했고 옛 대한주택공사, SH공사 등이 발주한 굵직하고 중요한 건축물에 전기설계를 수행하며 한창 성장하는 중소기업이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 집에서 일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던 중 회사 대표께서 회사에 나와 근무할 것을 제안했다. 고민 끝에 1998년 경력직으로 회사에 나와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해 지금껏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이 또한 나에게는 커다란 기회였고 그 기회를 주신 회장님과 사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남성 중심의 사회이다 보니 여자가 상사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동료나 부하 직원들은 여자가 상사임에 자존심이 상했고, 그로 인해 난생 처음으로 여러 직원들 앞에서 소리 높여 다투기도 했으며 시말서도 썼었다. 이는 나에게 부족한 점이 많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육아에 대한 부분도 만만치 않아 많은 눈물과 애처로움을 삼키면서 감내해야 했다. 아이들에게는 많이 부족한 엄마였고 지금도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여성 설계엔지니어 1세대로 불리는데 남성 위주의 사회적 환경과 육아에 대한 절대적 여러움에서도 내가 선택한 이 길을 지켜나가고 싶었다. 우선 퇴직과 재택 근무에 따른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때론 밤을 세우면서 부족한 부분을 습득했고 차츰 결혼 후 집에서 일했던 공백도 빠른 시간안에 메울 수 있었다. 동료들과도 적극 교류했고 회사에서도 이런 상황을 인지해 적재적소에 힘을 실어 주었다. 또 내 뒤를 이을 여성 후배들에게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역시 여성들이 잘하는구나’라는 긍적적인 생각을 심고, 여성의 부정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인식을 없애길 바랬다. 특히 네트워크부분에 대한 미약함을 극복하고 싶어 이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과 성격 변화, 리더쉽 소양과 네트워크에 대한 진실성을 담아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면서 지금껏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2010년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집행된 ‘농촌진흥청 지방이전 건설공사’로 기억된다. 당시 조달청에서 설계심의를 주관했는데 새로운 심의방법이 도입돼 공정별로 심의위원과 설계사들이 함께 모여 질의응답과 토론을 통해 실시설계 적격자를 결정했던 긴장되고 어려운 심의였다. 대형건설사 5개 컨소시엄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한양티이씨가 속한 건설사가 수주했다. 설계사의 직접적인 질의답변이 수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참으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농촌진흥청의 특성과 사용자 측면을 반영해 성공적인 설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2009년 설계를 시작해 2012년 완료한 ‘SK C&C의 판교IT Complex’도 기억에 남는다. 154㎸ 전기 인입과 당시 전산기계실 면적이 최대여서 수행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여러 복합적인 사항에 대한 아이디어 도출과 대형 무정전 전원장치(UPS)와 발전기 구성을 통해 무정전시스템으로 구축해 대형 전산센터 분야에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여성건설인협회 등 대외 활동도 활발히 하셨는데 대외적인 측면에서 전기분야에 여성의 존재는 전무후무했다. 제7대 한국여성건설인협회 회장을 수행한 것은 전기분야 여러 단체와 여성들과 유대관계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 협업과 동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도 가져 뜻깊게 생각한다. 아울러 동일분야 뿐만 아니라 건설 전 분야에 걸쳐 구성된 조직의 수장으로 선후배들 간 협업으로 통합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또 리더스 캠프를 통해 앞으로 세상을 짊어지고 나갈 후배들에게 엔지니어의 진가를 알려주고 이끌어 주는 의미있는 활동이었다. 앞으로 한국여성건설인협회에서 보다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후배를 양성할 것이라 생각하며 나도 힘을 실어주고 싶다. △경력단절여성(경단녀) 또는 후배 여성 건설인들에게 하고픈 말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남편의 말없는 협조와 양가 부모님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프로의식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부족한 기술능력을 배양하고 주도적인 업무방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 특히 부족한 리더쉽을 찾고 네트워크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 가정사에 대한 대한 부분은 효율적인 기준으로 감내하고 적응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 여성이 지닌 부드럽고 따뜻한 배려란 장점을 적절히 키우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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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KOWSAE Archives
Novemb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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